
여름 밤
-익명
여름,
햇빛이 세상을 감싸고 눈앞을 푸른색으로 감싼다고들 말하지만 내겐 그냥 계절 중 하나일 뿐이었다.
타카시 군, 짐 정리하는 거 도와줄까?
아 아니에요!
그래? 그럼 천천히 정리하고 나오렴. 오늘 퇴원했으니까 무거운 짐이 있으면 바로 불러주고.
네. 감사해요-
아주머니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짐을 정리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.
창문을 바라보니,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일까 눈물이 맺혔다.
넓게 보이는 풍경, 들어오는 따스함, 이래서 많은 방 중 이 방을 내게 주신 걸까?
처음이었다. 나를 먼저 집으로 오라고 해준 사람도, 내가 온다고 나의 방을 꾸며준 사람도.
짐 정리를 끝내고 저녁 준비를 조금이라도 도와드리자는 생각에 벅차오르는 마음을 뒤로 하고 적은 짐을 정리했다.
저... 뭔가 도와드릴 거라도...
어머, 벌써 정리가 끝났니? 방은 마음에 들고?
네,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.
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해주렴. 괜찮으면 안쪽 방에 시게루 아저씨를 모셔올래?
네-
조금만 더 걸어가면 신사가 있단다. 다음에 축제가 열리면 다 같이 다녀오자.
뒤 쪽에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강이 있어. 타카시 낚시해본 적 있니?
저기에 넓은 동산도 있어- 어렸을 때 올라가 많이 누워있었지.
식기를 내려놓는 달그락 소리와 평범한 이야기들을 하며 먹었던 첫 저녁을 나는 잊을 수 없다.
애매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, 겨울 다시 봄이 찾아온다.
어떻게 하면 두 분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까. 어떻게 해야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. 많은 고민들을 하는 것이 소용없게 네게는 많은 사람들이 옆에 생겨났다.
어이 나츠메 곧 네 생일이잖아. 그 날 토우코가 뭐 만들 거래?
생일.. 그러고 보니 이 마을에서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네- 선생, 그거 알아? 나 아버지랑 헤어지고 생일에 케이크 한 번 먹어본 적 없다? 다들 몰랐거든. 안 물어보니까 먼저 말하지도 않았고..
너 설마 토우코한테도 말 안 했냐?
응-
그럼 이번에 케이크 못 먹어?! 내 케이크!
먹더라도 그게 왜 선생 케이크야?!
실 없는 소리마저 즐거운 이 날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게 무섭다.
그리고 시간을 흘러 생일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그날이 왔다.
타카시 군, 오늘 저녁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건 어떻니? 케이크도 먹고!
...케이크.. 토우코 씨 오늘 제 생일인 거 아셨어요? 어떻게...
어머? 타카시 군 퇴원 수속이랑 다 내가 밟았는데 설마 몰랐을까 봐?
....!
당연히 기억하고 있지. 우리 가족이 될 아이의 생일은... 여름의 시작이잖니? 네 이름도, 생일도...
생일 축하한다-
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뻗친 머리를 만져주며 해 준 이 말은 너무나 다정해서 눈물이 났다.
내가 눈물을 보여서일까 같이 눈시울이 붉어진 아주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하다는 말뿐이었다.
아주머니가 돌린 전화에 부모님들의 허락을 받고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왔다.
나츠메! 생일 축하해!
너는 어떻게 생일을 미리 말 안 해주냐?! 덕분에 아까 전화받고 키타모토랑 급하게 시내 다녀왔다고!
자 생일선물-
얘들아- 이제 저녁 먹게 정리하고 마당으로 내려오렴-
네-!
나츠메, 아주머니께서 어떤 맛있는 걸 준비하셨을까?
글쎄.. 나도 준비되기 전에는 내려오지 말라고 하셔서 방에 있었거든...
메밀, 국수, 고기, 케이크까지 마당에는 상이 부러질 만큼의 요리가 올라가 있었다.
이걸 혼자 언제 준비하셨을까 하는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함께 했다.
다 먹을 수 없을 것 같던 양이 빠르게 사라지고 잠시 치워두었던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타키가 다가왔다.
나츠메 군- 생일 축하해!
아....
나츠메 뭐해! 소원부터 빌어야지!
아, 응!
소원을 빌고 초를 끄고 큰 박수를 받았다.
니시무라랑 키타모토는 한 손에는 포크를 한 손에는 폭죽을 들고 불꽃놀이를 했고,
아주머니와 아저씨, 타키와 선생은 돗자리에 앉아 케이크를 먹었다.
뭔지 모를 이 기분에 나는 타누마와 마루에 앉아서 소중한 사람들을 바라 보았다.
나츠메-
응?
나는 나츠메와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.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. 생일 축하해-
작은 상자를 내미는 타누마의 손과 한없이 다정한 이 말들이 다시 한번 나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준다.
...고마워...
모두를 배웅하고 혼자 들어온 방은 너무나도 조용했다.
창가 앞에 앉아 아이들이 준 생일 선물을 열어보았다. 키타모토와 니시무라는 우인장을 넣을 수 있는 크기의 작은 가방을 타키는 직접 만든 쿠키와 편지를 주었다.
그리고 타누와의 상자에는 다 같이 찍은 사진과 작은 돌이 들어있었다.
그 돌을 손으로 들어 달에 비추니 투명한 초록빛의 아주 아름다운 돌이었다.
... 여름, 여름 같은 돌이네-
무릎 위에서는 선생이 자고 있고, 벌레들이 울고, 시원한 바람에 푸른 나뭇잎들이 춤추는 소리가 들린다.
여름이 왔다-
